미소 연습
어 호 선
웃는 모습은 누구나 아름답다. 아무리 훤칠한 키에 스마트하게 생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다면 호감이 갈 리 없다. 뿐만 아니라, 그를 보는 사람마다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이는 누구나 다를 바 없으리라.
나이가 지천명에 이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오십년 세월 속에 자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뜻일 게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항상 웃는 얼굴의 뒤안길엔 감사하며 생활해 온 긍정적인 역사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를 만나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어느 누가 싫어하겠는가. 덩달아 상대방의 기분도 한 층 상승시키게 마련이다. 아침부터 그런 이를 만나 눈웃음 인사라도 나누는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상쾌해질 수밖에 없다. 허나, 만나면 공연히 부담감이 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 또한,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기분이 언짢은 사람도 있다. 대계 그런 사람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인상의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인상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무리일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밝게 웃는 얼굴은 언제 봐도 보기에 좋다. 상대방의 기분도 한 층 올려 준다. 그러나 항상 해맑은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그리 쉽지마는 않은 일이다. 생활 자체가 긍정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불평과 불만의 생활 속에선 미소가 숨어버릴 수밖에 없다. 항상 감사한 생활을 일상화해야 함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가 한다.
나는 근래 들어 식전마다 등산길에 오른다. 어느덧 이제 습관처럼 굳어졌다.
8년 전 둥지를 새로 튼 이곳 동탄신도시엔 보통 35층 아파트가 즐비한 데 이보다 더 야트막한 구봉산과 반석산 같은 야산을 공원으로 만들어 놨다. 이른바 보약을 먹여주는 공원산으로 통한다. 경사가 심한 바닥은 족히 십 센티나 되는 두꺼운 삼배 천으로 양탄자처럼 깔아놓았고 양옆은 튼실한 지지대까지 설치해놓아, 우리 같은 노년들도 무리 없이 산을 오르내리도록 배려했다. 곳곳엔 각종 운동시설까지 마련해놓았는가 하면, 약수대까지 깔끔하게 단장해 놓았으니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봄철이면 뻐꾹새의 노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새벽을 깨우기도 하고, 꿩들이 쏟아내는 메아리는 무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앙증맞은 다람쥐는 얄밉도록 얼굴까지 비벼대며 인사를 나누자하고, 알 듯 말 듯 한 야행화의 꽃내음도 코를 호강시킨다. 또 가을이면 알밤 줍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누군들, 등산길에 오르면 자연히 신바람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따라, 콧노래가 튀어나올 정도로 기분이 만점이다. 공기도 더욱 청정한 것만 같고 장마 끝이라 그런지, 풋풋한 내음이 코끝을 간질거린다. 그런데 나의 기분을 한층 끌어올린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생긋이 웃는 얼굴 모습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일시적으로 생각에 잠겨 골똘한 나머지 상대방을 보지 못했지만, 상대방은 나를 알아 본 모양이다. 육십 가까이 돼 보이는 여인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시온교회”에요 라고, 귀띔을 해주며 지나간다. 같은 교회 교인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한 순간, 낯익은 얼굴임을 감지하곤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평소 어떤 생활을 해왔기에 그토록 해맑은 웃음을 풀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해님보다 더 아름다운 웃음을 보이는 그의 얼굴에선 그저 편안함과 안온함, 그 자체였다. 어쩜, 그렇듯 밝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믿음이 좋은, 교회 권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가뜩이나 기분이 상쾌한 데 마음마저 날아갈듯 비상한다.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친다.
웃음은 전혀 부작용이 없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한다. 또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다. 그런가하면, 웃음은 인간을 기쁨으로 이끄는 마약이라고까지 극찬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선 웃음치료까지 등장해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는 사례도 접하게 된다. 확실히 웃음은 우리 건강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잔잔한 미소의 웃음이 있는가 하면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의 박장대소도 있지만, 어떤 웃음이던 우리 건강을 지켜내는 파수꾼임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뇌는 한 번 크게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을 포함한 스물한가지 쾌감 호르몬을 쏟아낸다고 한다. 박장대소로 크게 웃으면, 엔케팔린이라고 하는 최고의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이는 진통제로 흔히 쓰이는 모르핀보다도 삼백 배나 강한 통증 완화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니,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의학적으로도 웃음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키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능한 한 웃음을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엔 누구나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본다. 나도 산에서 인사를 나눈 여인처럼 남이 부러워하고 탐내는 웃음을 남에게 선사할 수는 없을까 하고, 고민에 빠져 본다.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아래위로 올려도 보고 입을 해님처럼 곡선으로 올려도 보지만, 내가 바라는 웃음은 아닌 것 같다.
매일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상생활 자체가 웃음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생활화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산에서 만난 동료 교인과 같은 수준의 차원 높은 웃음은 연출해 낼 수 없다 할지라도, 비슷한 수준의 웃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두고두고 고민을 해봐야겠다. 멋지고도 기분 좋은 웃음을 타인에게 선사할 날이 올 때까지, 거울 앞을 지키며 끈덕지게 웃는 연습을 해볼 작정이다. (월간문학 2016. 3월호 게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