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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특별한 사진)

그레이스파파 2006. 7. 15. 19:45
 

                          특별한 사진

                                                

                                              수필가   어  호  선


예부터 아내 자랑하는 사람을 일러 팔불출이라 했다지만, 이번만은 나도 어쩔 수 없을 성싶다. 가히 환상적일정도로 아내의 모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안에서도 명성이 높다는 메이컵 전문가가 얼굴을 가꾸고 치장을 한데다, 천사처럼 예쁜 드레스와 면사포마저 걸쳤으니 어디 아니 그럴 손가. 아내의 변신은 몇 해 전 결혼 40주년인 녹옥혼식(綠玉婚式)을 맞아, 그 행사의 일환으로 짜낸 내 작은 이벤트 가운데 첫 단계였다.

난생 처음 나도, 눈썹까지 그린 화장에다 턱시도까지 한 예복을 걸치고 나니, 1960년대 초 결혼 당시 청춘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대학 졸업 후 군(軍)에 있을 때, 나는 사모관대를 그리고 아내는 족두리를 머리에 얹고 전통 혼례식을 서둘러 올리고 말았다. 자연 결혼식 사진은 빛바랜 흑백사진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마저 볼 수가 없게 됐다. 왠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른 채 물음표로 남아있다. 나름대로 유추를 해 본다면, 아내가 고달팠던 과거사들을 반추해보고 싶지 않아서일 거라고, 상상만 해볼 뿐이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도록 꼭꼭 숨겨놓은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가끔 옛정에 미련이 있어,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이라도 보며 추억들을 낚고 싶은데, 당시 결혼사진은 온데간데없이 행방이 묘연하기만 했다.

정년 후, 마침 적성에 안성맞춤인 소일거리가 생겼다. 바로 결혼 주례를 하는 일이다. 과거의 이력과 특기(?)도 살릴 수 있으려니와 새 보금자리를 트는 신랑 신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 모른다. 식을 마친 후, 양가 부모들로부터 “선생님 주례사에 감동 먹었다”란 말이라도 듣는 날엔, 당사자가 아니고선 그 보람과 기분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주말이면, 주례 단 앞에 가지런히 서있는 신랑 신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름답게 활짝 피어난 한 떨기 장미꽃인들 어찌 이들에 비하랴. 그런데 결혼식이 끝난 후 주례를 들러리로 사진촬영을 할 때마다, 나는 자신을 의심할 정도로 소스라쳐 놀란다. 마음이 어느덧 신랑과 신부자리로 옮겨가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젊은 시절로 회귀하고픈 이 야릇한 병은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갔다.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버린 세월을 역류시키고자 하는 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나 할까? 이는 도무지  꺾일 줄 모르고 식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불현듯 아내에게 멋진 웨딩드레스를 입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일순간이라도 과거로 거슬러, 청춘을 되찾아 보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이 병은 드디어 “결혼 40주년 기념사진 촬영”이란 얼굴로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나와 아내는 양지바른 발코니에 마주앉아 모처럼 커피 타임을 가졌다. 측은한 눈길이 서로를 응시하는 순간, 시기는 이때다 싶어 이미 굳혀버린 결심을 털어놨다. 의외로 아내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겉은 시큰둥한 눈치였지만, 속마음은 수줍은 채송화처럼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그 유명하다는 ㄹ사진실. 촬영 예약을 마치고 내친김에 이대(梨大)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드레스실도 찾았다.

장사속이겠지만, 들리는 곳마다 참으로 멋진 발상의 전환이라며 반겼고 특히 며느리들은 ‘멋진 아버님’이라며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진실이던 아니던 개의치 않고, 기분은 이미 비상(飛上)하고 있었다.

2001년 4월 17일, 드디어 결혼 40주년 기념일이 닥아 왔다. 아내는 결혼 전날 밤처럼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밤새 얼굴이 까칠해졌다. 하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일정도로 타고난 미모에, 신부 화장과 멋스런 드레스 그리고 면사포까지 뒤를 받쳤으니, 어느 신혼부부가 이 원숙한 신부(?)에 비길 손가. 4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의 두께를 부둥켜안고 함께 덧칠해 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마나 아내가 아름다운지, 입가만을 맴돌던 원더플이 연방 밖으로 놀아난다.

촬영장인 현장 스튜디오를 향해 자유로를 질주하면서, 마음은 벌써 40년 전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이미 가족들은 도착해 있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탄성을 연발한다. 금방 촬영장은 해맑은 웃음으로 넘쳐났고 온 산천도 메아리로 화답하며 우리의 ‘결혼 40주년’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실내촬영이 끝나자, 시샘이라도 하듯 따스한 봄 햇살이 가족들을 밖으로 유인한다. 우리 내외와 아들 며느리 8명, 손자 6명 등 모두 16명의 대가족이 사진사의 연출에 따라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함박웃음을 담아내는 촬영을 끝으로, 오늘의 이벤트는 장고의 막을 내렸다.

금방이라도 결혼식을 올린 것처럼 미소 짖고 있는 노(老) 신랑 신부의 확대사진은 메말라가는 정을 소복소복 쌓여가게 하고,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둘이서 다정히 포즈를 취한 거대사진은 백년해로의 약속을 넌지시 암시해 주는 듯 하다. 이젠 찌든 결혼사진에 대한 미련도 없을 뿐더러, 구태여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이 세월의 나이테를 두르기까지 그때의 발상만은 참 잘했구나 하고, 자위를 하게 된다.

이제야 고백이지만, 결혼예물로 해줬던 닷 돈짜리 황금반지. 없어진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취직시험을 보기위해 상경(上京)하면서 아내 몰래 처분해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한마디 말이 없던 착한 아내. 그 아름답고 무던한 마음을 지닌 아내의 약지에 다이아반지를 끼워주는 행사도, 이날 이벤트에 동참하는 행운을 얻었다.

“결혼 40주년 기념사진”을 바라보며 음미할 때마다, 50주년인 금혼식(金婚式)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回婚式)엔 또 어떤 깜짝 이벤트로 아내와 가족들을 즐겁고 놀라게 할까 하고, 벌써부터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찾으려 즐거운 고민 중이다. 하지만 예와는 달라, 날로 무뎌져가는 심신이 과연 이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PEN 문학 2006. 봄호 / 選隨筆 2006 여름수필 36선에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