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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꼬 오리

그레이스파파 2006. 7. 20. 16:52
 



                                         잉꼬 오리

 

만날 때마다 건강을 과시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전갈은 인생무상이란 허탈감을 뼈 속 깊이 느끼게 된다. 전광판을 청(靑)과 홍(紅)으로 가르며, 살기 아니면 죽기 식으로 상한가와 하한가를 넘나드는 최근 주식시장도 인생무상만큼이나 하루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게 요즘의 현실이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발 빠르게 바뀌고 컴퓨터를 못하면 문맹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확 바뀌어버린 세상살이는 낙엽 지는 여울목에 서있는 연령층 사람들의 마음을 편히 안주시킬 리 만무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요즘 우리 집 거실에 자리하고 있는 한 쌍의 오리와 코끼리는 내 마음을 그나마 푸근히 감싸주고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거실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 오리 한 쌍은 참으로 정겨워 보기가 너무나 좋기만 하다. 거기다 언제 보아도 변함없는 의연한 자태가 더욱 좋아 보인다.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대하지도 여리지도 않은 적당한 몸매에 빨강 파랑 노랑의 색깔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언제 보아도 다소곳한 모습 또한 마음에 썩 들어 더욱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

수놈 오리는 암놈보다 몸매가 약간은 날씬하고 머리가 작아 성깔이 좀 있어 보이는 대신, 암놈 오리는 수놈에 비하면 몸집이 다소 있고 부리가 넓적해서 이해성 많은 후덕한 부자 집 맏며느리처럼 보인다. 또 다른 게 있다면, 수놈은 빨간 부리를 하고 있고 암놈은 파란 부리를 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두 놈 다 넓적한 부리는 날카롭거나 예리하지도 않은 원만한 선(線)을 이루고 있으며 머리는 큰 밤을 깎아 놓은 듯 둥글둥글하고 목은 그 내려 빠진 매끄러움이 흡사 미스 코리아의 각선미를 연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거기에 등은 약간의 굴곡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한결 더해주고 꼬리는 네 갈래로 길고 짧게 조화를 더한 채 비스듬히 하늘을 향하고 있어 날렵한 세련미까지 갖추고 있어 가관이다.

이는 몇 년 전 주부들이 마련한 모 백화점 자전바자회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모형오리지만, 하도 예쁘고 깜찍해 단 한 쌍이 남은 것을 얼픈 사 가지고

온 것이다. 그 후 지금까지 거실 텔레비전 위에서 사시사철 변함없이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춘하추동 언제 보아도 제자리를 벗어날 줄 모르고 언제나 한결같은 표정으로 서로 부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게만 보인다.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꼬리 안 번 치지 않고 또 궂은 일이 있다손 해도 짜증스런 표정 한 번 짓지 않는, 항상 그 모습 그대로여서 어찌 보면 사랑하는 아내 성품과도 닮은 데가 있어 내가 더욱 마음에 들어 하는지도 모른다.

오리는 단 둘이지만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암놈과 수놈이 밤낮 없이 부리를 마주 대고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외도(外道)를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짝임을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싶기도 해서 은근히 시기하는 마음까지 일 때가 있다.

이 한 쌍의 오리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이라는 코끼리 한 쌍이 등을 맞대고 있어 아주 가관이다. 원래 육중하게 생긴 모습과는 달리, 이 코끼리의 몸집은 오리보다도 더 작은 소품에 지나지 않는데도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이혼을 앞둔 부부처럼 무언가 폭발할 찰나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만 해 오리의 정겨운 모습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코끼리는 우리나라 산(産)이 아니라 대만산이다. 몇 년 전 동남아 여행을 할 때 “타이패이”시에 들렸다가 마음에 들어 내 품에 안겨 현해탄을 건너 온 것이다.

한국 산 오리 한 쌍과 대만 산 코끼리 한 쌍, 어찌 보면 두 동물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전연 그렇지가 않다. 산지(産地)가 다른 이질적 동물인데도 멋진 앙상블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들마다 찬송이 대단하다. 그런데 이 한 쌍의 오리와 코끼리가 오늘의 제 자리를 잡기까지엔 오랜 풍상(?)을 겪었다고나 할까. 이리 옮기고 저리 놔 보기도 하다가 결국 오리는 서로 부리를 마주 보게 그리고 코끼리는 그 앞에서 등을 맞대도록 안주시킨 것이다. 두 동물의 소품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준 것은 우리 가족이 아닌 파출부 아줌마의 발상이었다.

처음엔 꼬리를 맞대 놓기도 했고 얼마 후엔 물 위에 떠 나란히 가는 모습을 연출해 내겠다는 욕심에 앞쪽을 향해 가지런히 놓아 보기도 했다. 그 후로 1년이 넘도록 그대로 자리를 지켜 왔었는데, 지난 해 말 소담스런 함박눈이 소복소복 더러운 대지를 말끔히 뒤덮던 어느 날, 파출부 아줌마가 새로 오면서 드디어 지금의 정겨운 모습으로 안주시켜 놓았다. 수놈의 홍(紅)부리와 암놈의 청(靑)부리가 적당한 간격을 두어 “잉꼬 부부”처럼 앉힌 것이다. 서로의 파란 눈을 떼지 않고 매일처럼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이 한 쌍 오리의 정겨운 모습은 요즘 김빠진 맥주처럼 무미건조해 버린 우리 부부의 무감각한 덤덤한 삶에 무언의 회초리로 사랑을 일깨워 주는 훈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불현듯 “인간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이란 말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파출부 아줌마는 부부간의 정을 나눠본 지 이미 오래인 창상과부란 말을 얼마 뒤에 전해 들었지만, 그녀는 사랑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한이 맺혀 가슴에 멍울져 있었으면 우리 가족이 1년이 넘도록 찾아내지 못한 “한 쌍 오리의 정겨운 모습”을 단 하루 만에 연출해 냈을까.

하나의 소품이긴 하지만,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대할 때마다 한 쌍 오리의 다정스러움을 보면서 인생무상에 절어버린 마음의 상처를 위안 받곤 한다.

우리 가정은 물론 우리 사회도 이질적 동물인 코끼리와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잉꼬 오리”의 정겨운 모습처럼 닮아 갔으면 하고, 오늘따라 생각에 잠겨 본다.                            ( 한국 신문예 1986. 10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