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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주례 이변

그레이스파파 2013. 1. 16. 16:02

  쿵- 소리와 함께 꽈당 탕, 이어 수백 명에 이르는 축하내빈들의 박장대소. 주례 단에 서있던 나도 배가 뒤틀리도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온 식장이 웃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이는 몇 년 전 어느 호텔에서 결혼 주례를 집례할 때 있었던 실화다. 주례사가 끝난 다음 양가 부모님과 축하내빈들께 인사를 마치고, 신랑 친구인 사회자의 짓궂은 뒤풀이 행사 때 벌어진 일이다.

  이날따라 신랑은 연약한 몸매에 작은 체구인 데 반해, 신부는 헤비급에 달할 만큼 육중한 체구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회자는 얄궂게 ‘@@아 사랑한다’를 큰소리로 외치며 ‘신부를 안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열 번이나 하란다. 아무리 고집불통의 신랑일지언정, 이날만은 사회자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법. 신랑은 신부를 힘겹게 품에 안긴 했으나 앉는 순간, 그대로 꽈당 탕- 천둥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말았다. 열 번은 고사하고 단 한 번에 KO가 돼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사회자는 이미 상황을 예견하고 시킨 일이었으리라. 재치 있는 사회로, 축하내빈들에게 박장대소란 웃음보따리를 선사한 결과가 됐다.

 

  황당한 일도 있었다. 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회자는 일언반구의 상의조차 없다가, 끝 무렵 주례에게 만세삼창을 세 번씩이나 부르란다. 이 정도야 분위기를 위해 감내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사회자는 느닷없이 주례에게 제일 잘 부르는 18번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부르기도 거절하기도 참으로 난처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사가 분위기에 맞아야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다고 해서 이별 노래를 부를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 기억으론, 얼마간의 뜸을 들인 후 서툰 솜씨로 노사연의 ‘만남’이란 곡을 불렀다. 반 강요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주례가 축가를 불러서인지 축하내빈들의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어색했던 분위기를 반전시킨 일도 있다. 이런 비상시를 대비해 적절한 한두 곡의 노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익혀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후론 한 번도 노래 솜씨를 자랑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다.

 

  근례엔 4쌍이 결혼하면 1쌍 정도가 헤어진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이렇다 하니, 혹여 내가 주례를 집례해 준 신혼부부들이 이혼이란 불운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경우라도, 주례를 부탁받게 되면 당사자들과 직접 이메일을 통해 소통부터 한다. 바쁜 세상에 서로 만나 이야기는 나누지 못할지언정, 이메일의 왕래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래야만 최선의 맞춤주례사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례사의 내용은 결혼 당사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부 서로가 칭찬하며 살라는 말은 공통적으로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그것도 제일 먼저 당부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누구나 다 칭찬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엔 인색하고 서툰 것이 보통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부부간 칭찬은 인삼, 녹용, 산삼이 들어간 어떤 보약보다도 최고의 보약임에 틀림없습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상대방에 먹일 수 있는 최고의 명약은, 바로 부부 서로가 칭찬을 해주는 겁니다. 칭찬은 한 번 할 때마다 사랑이 소복소복 쌓여가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단점을 내세워 핀잔을 한다면, 사랑은 멀리멀리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화초도 물과 거름을 적절히 주고 정성껏 가꿔야만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사랑도 칭찬이란 거름을 먹어야만 충만한 사랑이 평생 동안 시들지 않고 향기를 발하는 법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의 요람인 화목한 가정은 굳건히 지켜질 것입니다.” 이렇듯 간곡히 당부하며 다짐까지 받고서야 둘째 셋째··· 다른 말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한편, 1년 후엔 인터넷 주소록에 저장해 놓은 인적사항을 토대로 ‘결혼 1주년 축하 메시지’를 빠짐없이 보낸다. 산울림이 될지언정, 주례로서 책임과 도리를 끝까지 다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지의 보건소장과 여약사의 결혼도 기억에 남지만, 중앙부처 사무관 신랑과 외교관 신부의 결혼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이들은 둘 다 서울 일류대 법과와 외교학과 출신으로, 같은 해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 각기 합격하고 연수원에서 사랑을 키워온 커플이다. 이들은 일류대에 입학했을 때 이미 부모님께 효도를 했고, 고시에 합격했을 때 또 한 번의 효도를 한 것이다.으로 부모님에 대한 최고의 효도는 둘이서 알콩달콩, 새록새록,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칭찬 겸 당부를 하면,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한 떨기 꽃이 어디 또 있으랴.

 

  예부터 결혼 주례는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갖췄음은 물론, 가정사에도 하자가 없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맡아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서인지 어쩌다 나에게도 여기저기 청탁이 들어와, 퇴직 후 200여 쌍 넘는 신혼부부들의 주례를 집례하는 행운을 잡았다. 나는 결혼 주례를 맡아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세상을 먼저 경험한 인생 선배 입장에서, 서로가 상대방에 무한한 꿈과 희망을 먹여줄 수 있는 방법들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신랑 신부는 가슴으로 공감하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인다. 이에 축하내빈들까지 뜨겁도록 반응해 주면, 마음은 이미 하늘을 비상하게 마련이다. 이보다 더 보람찬 일이 어디 또 있으랴.

다행인 것은, 주례를 집례해 준 신혼부부 거의 모두가 건실한 가정을 다복하게 꾸려가고 있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단, 신랑이 신부를 안고 낙상토록 유도한다거나, 주례가 축가를 부르는 이변만은 식장에서 살아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애써 간직한 18번 노래를 영원히 사장시킬지라도···.